나에겐 내가 태어난 고향 말고 또 하나의 고향이 있다. 그 곳은 바로 아프리카…. 아프리카에 가면 말라리아, 풍토병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를 잊지 못하는 병이다. 나는 의과대학에 재학 중일 때, 한국에서 만난 아프리카 친구가 인연이 되어 1년간 휴학을 하고 대학생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지원해 아프리카에 다녀왔다. 아프리카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의 삶에 비하면 부족함투성이였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 해였다. 처음에 나는 봉사를 하겠다며 아프리카로 갔지만, 나보다 가진 것 없을 줄 알았던 그들에게 받고만 돌아왔다.
남을 위해 살 때 훨씬 행복하다 2년 전, 드디어 의사가 되어 인턴 시절, 나는 운 좋게 긴 휴가를 얻어 내 단짝 친구와 함께 케냐에 의료봉사를 다녀올 수 있었다. 그 때의 감격은 지금도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다. 어설픈 막내 꼬마 의사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며 무한한 신뢰를 보이던 그들…. 이후 전국에서도 바쁘기로 유명하다는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바쁜 생활에 그 그리움을 마음 속 깊숙이 눌러 놓은 채 지냈다. 그런데 뭔가 나사 빠진 기계처럼, 허전한 마음이 크게 들어 올해 여름에는 다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아프리카다!’, 순수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웃음을 다시 볼 수 있음에 너무 설레었다. 짧은 휴가 기간조차 일을 하러 간다고 하니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의 시간은 진정한 마음의 휴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병원에서 매일 일어나는 많은 일들 앞에, 가끔은 초심을 잃고 기계적으로 일하는 주변 사람들과 나를 보며, 환자에 대한 사랑과 사람간의 교류 등 내가 이전에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배웠던 그 마음을 다시 한 번 맛보기 위해, 내가 그들을 돕는 게 아니라, 그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의료봉사라는 이름 아래 아프리카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이전에 내가 나를 위해 살았을 때보다, 남을 위해 살았을 때 훨씬 행복함을 여러 차례 느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가는 봉사팀은 현재 ‘굿뉴스 의료봉사회’가 거의 유일하다. 올해는 7월 중순부터 아프리카 6개국(가나, 토고, 코트디부아르, 케냐, 말라위, 탄자니아)에 순차적으로 의료봉사를 간다고 하였다. 나는 휴가 일정에 맞추어 가나로 정했다. 7월 말, 한국은 한창 무더위에 익어갈 무렵, 총 탑승 시간만 20시간가량의 기나긴 비행 끝에 가나에 도착했다. 한반도와 비슷한 크기의 가나는 태양이 작열하는 적도의 나라이며, 연중 고온다습 하다고 하나, 우리가 갔던 7월은 우기로서 한국보다 훨씬 시원해서 아프리카로 더위를 피하러 간 느낌이었다. 우리 가나팀은 모두 30명이었으며 현지 자원봉사자들까지 합하면 50명가량 되었다. 봉사단원 중에는 의사, 간호사도 있었지만 그 외 고등학생, 대학생, 일반 봉사자도 있었는데 모두가 의학 지식과 상관없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수백 명의 가나 사람들이 북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흥겹게 춤을 추며 우리를 반겨줘서 깜짝 놀랐다.
봉사단을 ‘희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우리는 내과와 외과, 소아과, 한방 등 여러 과로 분류를 나누어 봉사를 했다.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 약속한 듯 “whole body pain(몸 전체)”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이는 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무리한 일들을 하기 때문이리라. 외과에서는 주로 농양 절제와 봉합 등을 많이 했으며, 감염성 질환도 많았고, 병을 키워 중증으로 된 환자들도 많아 폐렴 환자, 쇼크 환자 등도 진료를 보았다. 나는 현지 의과대학에 다니는 여학생과 짝이 되어 영어와 토착어인 츄이어 통역을 통해 진료를 했다. 하루에 7명의 의사가 800명가량의 환자를 진료했다. 이틀간은 항구 근처에 있는 추장님 댁에서 진료를 했다. 그곳에는 의료봉사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모여 시작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걸어온 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며 줄을 서 있어 깜짝 놀랐다.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빴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즐겁고 편했다. 약 한 봉지에, 파스 하나에도 기쁘고 감사하다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다. 파스를 처음 본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꼭 설명을 해 주어야 했다. 아프리카에는 병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가벼운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실제로 몸이 많이 아프지만 돈이 없어 평생 의사 한 번 만나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 중에는 우리 의료 봉사단을 ‘희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최선을 다해 진료했는데도 의사와 환자 혹은 보호자간에 신뢰가 없어 속이 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아프리카 사람들은 우리를 믿고 작은 치료에도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사해 하기에 치료 효과도 더 좋고, 모두가 신이 나서 피곤함도 잊은 채 진료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하찮은 의술이 꼭 필요한 곳이 있다는 마음에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프리카 의료봉사를 가서 며칠을 보내면,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들은 우리의 딱딱해진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마음이 많이 든다. 우리는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이미 친구인 것이다. 고된 업무로 지치거나 매일 같은 일상으로 삶의 의미를 잃고 있다면, 내년 여름휴가에는 여러분도 한번 아프리카 의료봉사에 도전해 보시라. 기대치 않았던 새로운 기쁨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택한 이 직업이 얼마나 특별하고 감사한 일인지 분명히 발견할 것이다. 자, 이제 내년 여름에는 함께 아프리카 향수병에 빠져보는 것이 어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