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아이티 델마 시청에서 안과의사 김형근씨가 현지 주민을 상대로 진료를 하고 있다.
시청 건물 옆 큰 천막 밑은 이미 남녀노소 100명 이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청 정문 안팎에는 또 다른 100명이 줄을 서 있었다. 무료 진료를 오전 8시에 시작하는데, 두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일부는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 몇 시간을 걸어왔다. 이들은 국제청소년연합(IYF·International Youth Fellowship)이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달려왔다. 2001년 설립된 이 단체는 세계 84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저개발 국가 등에서 무료 진료 등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IYF는 아이티에서 12일부터 15일까지 4일 동안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지난해에도 봄·가을에 두 차례 무료 진료를 한 바 있다. 이번 봉사에는 한국과 미국 동포 의사 4명 등 의료진 18명이 참가해 4000여 명을 진료했다.
진료를 받은 아이티인들은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라며 반겼다. 100여 명은 안과 진료와 시력 검사 후 안약과 안경 등을 받았다. 안과 전문의 김형근(44·대전)씨는 “사우나 안처럼 후텁지근한 날씨와 모든 게 불편한 환경에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치과 진료는 준비과정부터 복잡했다. 약품은 물론 치료 의자·기구들까지 한국에서 공수했다. 또 치아를 치료하기에 앞서 혈액을 뽑아 에이즈 검사부터 했다. 치과의사 추진호(45·대구)씨는 “좋은 뜻에서 무료 진료를 하려다 오히려 감염시키면 더 큰 문제”라며 “과거 의료봉사 때는 에이즈 양성 반응자가 나왔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환자 가운데 생후 12개월 여아인 제퍼선 알스나는 의료진에게 안타까움과 기쁨을 동시에 안겼다. 그는 머리에 물이 차 기형적으로 큰 데다 두 발이 안으로 말려 있었다. 중국계 미국인 간호사 에이미 치(29) 등은 알스나가 머리에 찬 물을 배 쪽으로 빼내는 튜브의 교체가 시급하다고 판단했지만 현장에선 손을 쓸 수 없었다. 이 같은 사연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하루 만에 미국 병원 2곳이 무료로 수술시켜 주겠다고 연락해 왔다.
아이티(면적 2만7749㎢, 인구 약 900만 명)는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가장 가난한 나라. 2010년 1월 12일 규모 7.0의 지진이 일어나 22만 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많은 이재민이 아직도 천막촌에서 생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