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D청년슈바이처상 수상자 박소영 - 13회 전공의 사회활동부문 수상
작성일 : 2016-10-21
비행시간만 꼬박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 그곳으로 의료봉사를 떠나는 의사가 있다. 환자 보기도 바쁜 일상 속, 없는 시간을 쪼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0일 아프리카로 떠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단다. 그렇게 아프리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아프리카는 성적에 맞춰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목표의식 없이 살아가던 그에게 좋은 의사의 꿈을 갖게 된 양분이자,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지난 2013년 본지와 한국의료윤리학회가 공동 제정하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와 한국MSD가 후원한 ‘제13회 MSD청년슈바이처상’ 사회활동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양지병원 응급의학과 박소영 과장의 이야기다.
2년 전 수상 당시,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였던 박 과장의 수상소감은 많은 이들의 박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상금으로 받은 1,000만원을 해외 의료 봉사활동에 사용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슈바이처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치료자 및 연구자로 성장토록 제정된 MSD청년슈바이처상의 의미를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하는 수상자인 셈이다. ‘젊은 슈바이처’ 박소영 과장은 ‘진정한 행복’을 찾은 삶의 반환점이 바로 아프리카라고 말한다.
저주받은 아이에서 복덩이로
상금 1,000만원을 해외 의료 봉사활동에 사용하겠다고 공언한 박 과장은 정말 약속을 지켰을까. 기자의 질문에 박 과장은 MSD청년슈바이처 상을 수상할 즈음 떠났던 케냐 의료 봉사활동 중에 만난 1살 된 합지증 아이의 이야기를 꺼냈다.
“선천적으로 합지증을 안고 태어난 1살 된 켄빈이란 아이를 만났어요. 장애가 있던 아버지를 대신해 아이의 어머니가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상황에서 수술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죠. 켄빈을 돕고 싶은 마음에 SNS를 통해 켄빈의 이야기를 알렸어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고, 심지어 식당을 하루 내어 줄 테니 콘서트를 해 수익금을 모으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들어왔어요. 켄빈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고 합지증 수술에 필요한 비용 일부를 마련하게 됐죠. 그 때 모은 수익금과 상금으로 켄빈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아이의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작은 가게도 차려줬다. 단순히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기보다 가족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가난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이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애를 안고 태어난 켄빈이 ‘저주받은 아이’에서 ‘복덩이’로 가족의 자랑이 되기도 했다고.
“아프리카에서는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를 저주받은 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아이가 태어난 집안도 저주받았다고 손가락질 받죠. 작은 구멍가게지만 한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켄빈이 저주 받은 아이가 아닌 복덩이로 인식시키게 된 계기가 돼 기뻤어요.”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가 좋다는 여자
박 과장이 의료 봉사활동을 떠나는 지역은 아프리카 오지다.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 ‘베넹’이나 ‘레소토’의 주민들은 평생 의사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의료혜택은커녕 제대로 된 의료시설도 갖추지 못한 이들의 소원은 의사를 한 번 만나보는 거라고. 때문에 박 과장은 나의 행복, 내 가족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프리카로 떠나는 원동력이 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일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잖아요. 모두 가치 있는 일이지만 평생 그렇게만 산다고 생각하면 재미없잖아요. 더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산다면 더 의미 있는 삶이 될 거라고 믿어요. 제게는 명품 백을 사는 것보다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박 과장이 아프리카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조건 없이 내어준 ‘사랑’ 때문이다. 아프리카 케냐 빈민촌에 한 평 남짓한 누더기 집에 온 가족이 모여 살면서도 한국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하러 온 친구가 고마워 콜라를 내어 준 따뜻함에 자꾸만 아프리카로 발걸음을 하게 된단다.
“콜라를 대접하려면 그 친구네 가족은 며칠을 굶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먼 나라에서 자신들을 위해 봉사를 온, 자신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우리에게 고맙다며 콜라를 대접했어요. 생김새도 피부색도 다르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똑같이 따뜻한 거구나 느꼈죠. 그 때 마셨던 콜라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나누는 삶이 가치가 있고 그게 진정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자꾸만 아프리카로 떠나는 이유는 아마도 행복을 찾기 위해서 아닐까요.”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방향키
가끔은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해 휴일도 없이 꼬박 진료 일정을 채워야 하는 삶이 고단하지만, 그럴 때마다 MSD청년슈바이처상은 방향키 역할을 톡톡히 해준단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MSD청년슈바이처상은 과분하다고.
“사실 슈바이처의 이름이 들어간 MSD청년슈바이처상은 너무 과분하게 느껴져요. 슈바이처처럼 헌신하며 살 수 있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제가 왜 이 길 위에 서 있는지, 이 방향이 맞는 건지,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어주고 자꾸만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박 과장은 지난 9월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레소토 왕국으로 떠났다. MSD청년슈바이처를 수상한 후 떠난 5번째 아프리카 행이다. 올해 인천에서 열린 세계 교육부장관 회의에서 만난 레소토 왕국 교육부장관과 우연히 맺게 된 인연으로 국왕 초청을 받아 떠나게 됐단다.
“놀랍고 새로운 일은 늘 작은 인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목표 없이 살던 의대생 시절,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두두’와의 인연이 그랬듯이 작은 인연도 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거기서부터 가치 있는 일들이 시작된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됐거든요. 이번 레소토 왕국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 되요.”
미래의 청년슈바이처를 꿈꾸는 의대생, 그리고 전공의 후배들에게도 한 마디 덧붙였다.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한 적 있었어요. 사회자가 MSD청년슈바이처상 수상 목록을 보고 거창하게 소개해 주셨는데 너무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나요. 단순히 제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나는 건데 말이죠. 그런데 인생에서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을 찾아 떠나는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제가 큰 능력이 있어서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늘 한계를 넘으며 사는 게 재밌어요. MSD청년슈바이처상을 통해 후배들에게도 가치 있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해보라고 얘기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도 감사해요.”
박 과장에게 ‘MSD청년슈바이처상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져봤다. 그러자 “그저 과분한 상”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슈바이처란 이름이 갖는 헌신의 의미를 자신이 한 일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MSD청년슈바이처상은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나침반’이라고 설명한다. 그 누구보다 아프리카를 사랑한 박 과장은 지금 이 시간, 아프리카 레소토 왕국으로 행복을 찾기 위한 삶의 여정을 떠나 있다.